안녕하십니까,
인하대학교 황성원 교수님 연구실에서 석사 연구원 생활 후에 졸업하고, 현재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이형건입니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한창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있으신 분들이라고 생각됩니다. 그중 연구자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학생분들에게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여러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기회를 제공해주신 교수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글을 읽으실 때 주의하실 점이 있습니다. 저는 단지 여러분들보다 조금 더 일찍 배웠을 뿐, 여러분보다 나은 점이 하나 없는 평범한 학생입니다. 제가 연구자 생활을 거치면서 가지게 된 개인적인 가치관을 공유한다는 점 유의하시고 아래 글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1. 석사 진학의 계기
저는 학부 3학년 겨울방학 때 EPC 회사에서 인턴 실습을 하였습니다. 제가 맡았던 업무는 황산 제조 공정의 PFD 및 P&ID의 검수와 수정이었습니다. OJT 교육으로 공정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배우고, 이를 업무에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2개월 동안의 인턴 실습을 무사히 끝마쳤고, 저는 진로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됩니다. 회사에 들어가서 정년까지 이 일을 재미있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입니다. 회사는 능률을 위하여 상당히 체계적으로 업무를 나누어 수행합니다. 업무가 세분되기 때문에 개인이 수행하는 업무는 단순해질 수밖에 없으며, 이는 곧 지루함으로 귀결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마다 우선순위는 다르겠지만, 저는 일에 대한 흥미를 우선순위로 두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맡은 일이 재미가 없다면, 금방 지루함을 느끼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직을 위해 다른 회사를 찾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겁니다 (높은 연봉이 자신이 느끼는 지루함을 충분히 보충할 수 있는 경우는 예외). 이직한 후에도 업무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면, 악순환은 계속 반복될 것입니다. 3학년 때의 저는 식견이 매우 좁은 상태였지만 (2개월의 짧은 인턴 생활, 다른 분야의 회사 경험 전무), 선배들에게서 전해 들은 이야기 덕분에 학부생 신분으로 수행할 수 있는 회사 업무는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힌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위와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취업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던 와중, 교수님이 먼저 저에게 연락을 주셨습니다. 제 머릿속을 들여다보신 게 아니겠지만, 교수님이 저에게 학부 연구원 제안을 해주셨습니다. 따로 주어진 업무는 없고, 연구실에 머물면서 연구원들이 어떻게 연구를 수행하는지 보고 필요한 게 있으면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1학기와 2학기에 걸쳐 봐온 연구실 선배들의 모습은 저에게 굉장히 매력적으로 보였습니다. 자발적으로 밤늦게까지 남아 자신이 맡은 과제와 연구를 완수하기 위하여 논문과 서적을 뒤져가며 해결책을 모색하였습니다. 단순히 책임감만으로 수행하고 있다곤 표현할 수 없는 이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과정은 제가 원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석사 연구원으로 진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진학 희망을 하기 전에 든 고민이 있는데, 과연 내가 선배들처럼 과제와 연구를 잘 완수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 인제 와서 생각해보면, 이런 고민은 하등 쓸모없는 고민이었다고 느낍니다. 연구자로서의 재능과 적성에서 좀 더 풀어 얘기하겠습니다.
2. 연구실에서 하는 일
일반적으로 공정 연구실에서 하는 일은 공정 개발 및 시뮬레이션입니다. 공정 개발 및 시뮬레이션이 필요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플랜트 관점(Macro-scale)에선 신공정 개발에 필요한 CAPEX, OPEX 확인 및 LCA, 경제성 평가, 공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trouble 예측과 방지법 및 예방법 제공, sensitivity analysis, 그리고 시간과 비용의 감소를 취할 수 있기 때문이고, 2) Micro-kinetics modeling 관점에선 특정 물리적/화학적 반응에 대한 기전 확인을 통한 insight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고, 그리고 3) 신소재의 여러 가지 물성치(온도와 압력에 따라 변하는) 예측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스케일이 큰 석유화학 공정이든, 그리고 스케일이 작은 배터리, 반도체든 어느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시뮬레이션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Offshore plant engineering과 Li-metal battery modeling를 수행하였습니다. 선배들의 도움으로 모델링에 필요한 Software 사용법과 내용을 배웠고, 이를 통해 제가 맡은 과제를 무사히 수행하였습니다. 연구 이외에도 조교 업무, 과제 계획서 작성, 학회 발표, 논문 작성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PPT 작성 능력, 많은 사람 앞에서 발표하는 능력 등을 기를 수 있습니다. 모든 행동은 맘먹기에 따라 달라집니다. 뒤치다꺼리라고 생각하면 위의 업무를 통해 얻어갈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부족한 능력들을 메꿀 기회 기회라고 생각한다면, 많은 것들을 얻어갈 수 있습니다.
3. 연구자로서의 재능과 적성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적성은 약간 필요하지만, 재능은 전혀 필요가 없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뛰어난 연구자는 엉덩이가 무거운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연구자보다 1분 더 오래 앉을 수 있으면 그 사람이 더 뛰어난 연구자입니다. 논문을 읽고 내용을 체화하여 자신이 고민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뛰어난 연구자입니다.
논문을 읽고 이해한다는 건 재능의 영역이 아닙니다. 영어를 모르겠다면 번역기는 이용하면 되고, 모르는 개념이 나왔다면 구글링을 통해 배워가면 됩니다.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한 분야에 오랜 시간 발을 담그고 있다 보면 자연스레 남들보다 그 분야에 대해 더 알게 되고, 전문가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엉덩이가 무거운 사람이 뛰어난 연구자라고 생각합니다.
4. 당부의 말
첫 번째,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습니다. 제가 쓴 글을 다시 읽어보시면 항상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성장해 나갔습니다. 만약 혼자였다면, 제가 지금까지 이룬 성과의 반도 이루지 못했을 겁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학생분도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에 읽고 있을 겁니다. 저 또한 교수님께 도움을 받았고, 그게 이어져 내려와 이렇게 글로나마 여러분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더라도 옆에 있는 동료와 함께라면 견뎌낼 수 있을 겁니다. 사회 모든 곳에서 통용됩니다. 혼자 있으면 빨리 갈 수 있지만, 함께라면 멀리 갈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대학원 진학은 여러분의 금쪽같은 시간을 투자하는 곳입니다. 동기들은 취업하고 2년 동안 돈을 벌고 있을 때, 본인은 학교에서 기말고사를 준비하고 논문을 쓰고 있습니다. 학부생 때와는 다르게 능동적으로 모든 것을 수행해야 합니다. 열심히 한 만큼 성과가 돌아오는 곳이 대학원입니다. 만약 진학을 하게 된다면, 비싼 등록금과 2년이라는 긴 시간을 생각해서라도 자신의 시간을 오롯이 연구에 쏟아부어 최대 성과를 내야 합니다. 본인의 시간을 허투루 쓰지 말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멀리 가기 위해 쭈그려 앉아 신발 끈을 다시 묶는 중이라는걸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