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학기 지도 학생과 상담 시간을 가지며 학교생활, 진로, 교외 활동, 등 다양한 얘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습니다. 이럴 때면 학생들에게 많이 듣는 얘기 중의 하나가 "교수님, 대학교 생활은 열심히 한 것 같은데 막상 졸업 후에 어떠한 진로를 가질지 모르겠어요"라는 한숨 섞인 고민입니다. 사실 제가 대학생일 때부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끊임없이 가졌던 고민 중 하나도 역시 진로에 대한 고민이었던 것 같습니다. 주변 친구나 주위 분들의 걸어온 길을 옆에서 보면 대학 졸업 후 가진 첫 직장이나 관련 산업 분야에서 20~30년 동안 근무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보게 되는데, 그만큼 대학 졸업 후 가지는 첫 직장이 학생들의 삶에 끼치는 영향은 무척이나 큰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중요한 첫 직장을 고르는 데 있어서 우리의 학생들은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 가를 자문할 때 걱정이 앞서게 됩니다.
학생들에게 첫 직장을 고를 때 항상 ‘직무(職務)’와 ‘산업 분야’, 두 가지를 주로 고려할 것을 당부합니다. 사전적 의미에 의하면 직무는 직책이나 직업 상에서 책임을 지고 담당하여 맡은 사무를 말합니다. 즉, 직무는 여러 가지 기준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사업부, 구매부 등과 같은 사무직이 있으며, 연구 개발, 설계부, 생산 관리와 같은 기술직 등이 있습니다. 직무를 고를 때 주로 고려해야 할 것은 본인의 성격 및 유형과 잘 맞는지 고민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첫 직장을 고를 때 지원했던 직무의 성격이 본인의 성격과 잘 맞지 않아서 고생했던 기억이 생생하기 때문입니다. 일단 본인에게 잘 맞는 직무를 알게 되면 본인의 전공을 활용할 수 있고, 시대의 흐름을 파악해서 본인이 흥미를 느낄만한 산업 분야를 고르는 것이 좋습니다. 다만, 이러한 산업 분야를 고를 때에도 미디어가 앞다퉈 언급하는 산업 분야 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를 신중하게 검토할 것을 당부합니다. 왜냐하면, 갑자기 주목 받는 산업일수록 거품이 끼어있을 가능성이 크고, 이 거품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항상 꺼지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직무와 산업 분야를 두루 경험해보고 본인에게 맞는 직장을 고를 수 있는 학생이 국내에서 과연 얼마나 될까요? KAIST의 정재승 교수가 쓴 열두 발자국에는 "인생의 지도는 학생이 그려야 하고, 학교는 젊은이들에게 지도 기호와 지도 읽는 법을 가르쳐주고, 목적지까지 빠르게 도착하는 법을 가르쳐준다"라는 글귀가 있습니다. 이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젊은이들이 이러한 지도를 그릴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은 정작 누구의 몫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국내에는 학생들이 산업을 경험할 기회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대학교 생활을 하면서 자신만의 지도를 그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최근에 들어와서 일부 대학들이 기업연계형 장기현장실습 (Industry Professional Practice) 제도를 통해 산업체와 계약을 맺어 학생들이 학기 또는 방학 중에 기업에서 직접 실습하며 실무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참여 대학 및 회사의 숫자, 실습 기간이 무척 제한적이기 때문에 많은 학생이 혜택을 받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반면에 학생들이 직접 회사의 인턴을 지원해서 경험하는 방법이 있지만, 이 또한 ‘체험형’보다는 ‘채용연계형’ 인턴 모집인 경우가 많습니다. 즉, 졸업 예정인 학생이나 기졸업자들만이 지원할 수 있으므로 저학년의 학생들이 지원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반면에 미국이나 유럽의 많은 국가에서는 인턴십이나 Co-op (cooperative education) 제도가 잘 발달해 많은 학생이 졸업 후 직장을 가지기 전에 본인의 적성에 맞는 직무를 찾고, 본인의 흥미에 맞는 산업 분야를 파악해서 미래를 설계합니다. 실제로 미국 대학의 경우에는 졸업하기 전에 평균 2~3번의 인턴십을 거친 후에 졸업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학생들은 좀 더 본인에게 잘 맞는 회사를 미리 선정하고 이 직업을 갖기 위한 기술을 얻고자 대학 기간 중 노력하며, 회사에서는 잘 준비된 학생을 받아들임으로써 회사와 개인이 같이 성장할 수 있게 됩니다. 실제로 약 15년 전에 영국의 런던 근교에 있는 Guildford에서 근무했을 때, 그 지역의 고등학생들이 회사 탐방이라는 주제로 지역의 회사를 방문하였고, 저를 포함한 직원들이 본인이 맡은 업무를 상세히 설명해 주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미국의 Illinois 주에 있는 Des Plaines에서 근무했을 때는 매년 회사 직원의 자녀들이 회사를 방문해서 부모님의 업무를 이해하고 배우던 자리가 있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국내의 많은 기업과 정부 기관이 학생이 현장을 방문하기 위한 문턱을 낮추어 주고 현장 실습 기회를 확대함으로써, 학생이 단순히 수업 시간에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 받기보다는 현장에서 몸소 체험하고 지식을 쌓으며 자신만의 지도를 열심히 그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학생들이 교수와 상담 시간을 가질 때 본인이 그린 지도를 한껏 펼쳐 보이면서 진로를 논의할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고대합니다.
황성원 교수